글
주남저수지
답사/08 경상,전라
2013. 2. 22. 23:04
2008 The 지리 춘계 정기 답사 초록
주남저수지는 우리나라 남동남쪽에 위치한 경상남도 마산, 진해, 김해에 인접한 창원시 동읍, 대산면 일대에 위치하며 총 면적 약 602ha로 산남 75ha(22만 5천평), 주남(용산) 285ha(85만 5천평), 동판 242ha(72만 6천평)의 3개의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남저수지의 생성은 대산평야의 개발에 따라 이루어졌다. 대산평야는 낙동강과 김해시의 진영사이에 발달한 평야로 낙동강 변에는 해발 약 8m의 자연제방이 넓게 형성되어 있고, 남쪽과 서쪽 주변의 구릉지 또는 산지밑에는 해발고도가 3m정도에 불과한 상습적 침수지역이 넓게 자리한다. 상습적 침수지역은 원래 배후습지였던 곳으로 대산 평야가 오늘날과 같이 개발되기 이전 자연제방은 밭으로 이용되었고, 배후습지에는 자연상태의 '늪'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대산평야는 일제강점기 초에 일본인 지주가 약 2000ha의 배후습지를 확보하여 설립한 촌정(무라이)농장의 설립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농장에서는 낙동강의 홍수를 막아내기 위해 충적층을 뚫고 솟아오른 작은 구릉등(이곳 사람들은 이를 '똥뫼'라고 부른다.)을 연결하는 촌정제방을 쌓았고, 제방의 끝의 주천강에 갑문을 설치하여 평상시에는 강물이 바깥으로 흐르게 했다. 남서쪽 구릉지 밑의 '늪'에는 주남저수지를 축조하여 그 바깥에 양수장을 설치해 집중 호우시에는 갑문을 닫고 농장안의 빗물을 주남저수지로 퍼내고, 농업용수가 필요할 때는 저수지의 물을 끌어다 쓰는 독특한 수리 시설을 갖추었다.
밭으로 이용되던 촌정제방 바깥의 넓은 자연제방은 1920년 설립된 대산수리조합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28년에 낙동강에 제방을 쌓고 낙동강물을 공업용수로 퍼올리는 본포양수장을 설치하여 관할구역의 밭을 모두 논으로 개답할 수 있게 되었다. 대산평야에서는 수리시설이 계속 확충되어 용수문제는 해결된 지 오래나, 집중호우 시에는 주남저수지 쪽에서의 빗물에 의한 침수피해는 면치 못하고 있다.
주남저수지는 근처 동읍과 대산평야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낙동강 범람 시 홍수조절을 하는 기능을 갖는다. 최근 주남저수지는 100여 종이 넘는 새들이서식하고 있는 철새도래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탓에 겨울이 되면 많은 탐조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많은 사람의 여가 및 자연학습장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대산 평야와 같은 큰 강 하류의 평야가 오늘날과 같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자연제방은 밭으로 이용되었고, 배후습지에는 자연 상태의 늪이 분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주요 평야는 지형에 따라 개발과정이 다르지만 대산평야와 같이 대부분 범람원으로 이루어졌고, 대규모로 추진된 범람원의 개발과 간척지의 조성은 근대적인 토목기술과 많은 자본 및 노동력의 투입에 의한 것이었으며 주로 일제강점기 때에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모두 대동소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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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처음 가게 된 답사에서 가장 처음 들린 장소는 바로 주남저수지였다.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아오, 아침 열시부터 무슨 저수지여...'라고 생각했던 새내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지금의 내가 주남저수지에 아침 열시에 가게 된다면....뭐, 여전히 '아오, 무슨 아침부터 저수지여...'라고 생각할 것 같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