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면

답사/09 전라 2013. 2. 24. 15:32

 

  광활면의 광활은 '넓고 탁 트인 곳'이라는 데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원래 광활면은 동진강 하류의 간석지 인데, 자  생 소나무가 한 그루도 없고, 농토는 염분의 영향으로 비옥하지 못했다. 1923년 10월 일본인 재벌 아부방차랑이 자기 자본 100만엔과 일본 정부 보조금 100만엔 등 200만엔으로 동진농업 주식회사를 창설하고 방조제를 쌓기 시작하여 만 3년 후 준공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전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이 곳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으로 만들기까지는 다시 9년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광활면에는 1828 정의 논이 생겨나 논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1답구>에서 <9답구>까지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 것이 곧 마을 이름이 되었다. 

 

보통 간척지를 경작하는 주민들은 농경지로부터 떨어진 원래의 해안선 부근의 구릉지에 집촌을 이루기도 하지만, 간척지의 규모가 큰 경우에는 농경지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농경지와 농가를 밀착시켜 산촌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농경에는 유리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서기 어려운 것이 단점이다. 또한 식수와 댈감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강한 바람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등 생활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광활면 간척지의 촌락은 열촌의 형태로 농토와 수로가 이어지는 곳에 드문드문 6가구씩 배열된 열촌을 이루고 있으며, 각 농가는 일자형 3칸 평면구조의 가옥형태가 나타난다. 이와 같은 촌락과 가옥의 형태는 일제가 영농의 편의, 공동작업의 실시, 소작인의 감시의 효율화를 위해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아직도 일부는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수십 가구의 마을로 성장하여 원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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