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돌목

답사/09 전라 2013. 2. 24. 17:08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의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으로, 명량해협 또는 명량수도라고도 한다. 길이는 약 1,000m, 폭은 약 500m, 단면적은 약 8500㎡이고, 진도대교 부근 울돌목의 가장 좁은 부분은 길이 약 100m, 폭 300m, 중앙부 수심은 약 20m 정도이다.
 
  울돌목이라는 이름은 굴곡이 심한 암초 사이를 소용돌이치며 달리는 조류가 울음소리를 내며 급하게 흐르기 때문에 '바다가 우는 길목'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곳의 유속은 평균 5.5m/s , 해수면 표층의 유속은 최대 6.5 m/s으로 매우 빠르다. 그 이유는 수도(水道) 남단에서의 고조시각이 서단에서의 고조시각보다 1시간 40분 정도 빨라, 밀물 시와 썰물 시 해협의 양단에서 약 2m 수위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10:30a.m. 물살이 가장 세다.)
 
  울돌목의 상공에 떠 있는 진도대교는 해남군과 진도를 잇는데, 제 1대교는 1984년 10월, 제 2대교는 2005년 12월에 각각 완공되어, 현재 쌍둥이다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진도대교 양쪽 밑에는 이런 물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명량대첩이 일어난 곳
: 이순신장군 동상이 세워져있다.
 
울돌목은 명량대첩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명량대첩이란 1597년 9월 16일, 정유재란 중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 해협의 강한 조류를 이용하여 아군 12척의 함선으로 왜선 130여척을 궤멸시킨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대승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한산도대첩, 노량해전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해전에 속한다. 왜군은 조류가 남동쪽에서 북동쪽, 즉 자신들의 항해 방향과일치할 때 전세를 밀어붙일 계획이었으나, 조선 수군의 공격에 전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후가 되자 조류의 방향이 바뀌어 후퇴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전멸하였다. 당시 왜군은 400여척에 2만 명의 병사를 싣고 울돌목을 통과하여, 북상 중인 육군과 연합으로 수도 한양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이 해전으로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 이해전은 곡창 지대인 호남 지방을 왜군에게 빼앗기지 않았다는 전략적 의의를 가지기도 한다. 명량대첩 기념관에는 이 해전의 의미를 압축한 "양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비문이 있는데, 이를 해석하면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를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도진 취락 :
과거 다리로 이어지기 전에는 나룻배로 왕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나룻배가 발착하는 도선장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 도진취락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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