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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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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서울의 관문이며, 국내 최대 공업지대의 하나인 경인공업지대와 중부지방을 세력권으로 하는 서해안 제일의 무역항이다. 8개의 화물취급 전용부두가 있으며, 연간 3464만 톤의 하역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외항에서는 유류와 연안 해사(모래), 무연탄 등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
▽ 갑문의 원리를 설명한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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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k이란 선거(船渠)라고도 한다. 사전적 정의는 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서 조선소,항만 등에 세워진 시설이라고 되어있다. 쉽게 말하면 배를 주변이 막힌 곳에 넣고서 물을 빼고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말한다.
조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 해안(예- 황해)에는 항구를 건설하려면 조차를 극복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한데, 수문식 독이 대표적인 시설이다. 썰물이 시작되면 수문을 닫아서 수문 안쪽의 도크에서는 수위의 변화가 없어서 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게 한 시설이다.
갑문 또는 수문이라는 것은 배가 도크에 들어온 뒤 바닷물의 움직임을 막기 위한 문을 뜻하는 것으로 인천항의 경우에는 슬라이딩 식으로 되어있다. 인천항의 내항과 외항을 갑문과 도크로 막아 격리시킴으로써 서해안의 큰 조수간만의 차로 인한 해수면의 높이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는 원리이다. 외항에서 인천항의 내항으로 들어올 때는 배가 들어오기 전에 갑문을 닫아둔 상태로 도크내의 해수면이 황해의 해수면과 같아지도록 물을 빼거나 넣거나 해서 조절한다. 그렇게 조절이 되면 갑문이 열리고 배가 도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원리이다. 배가 도크 안으로 들어간 후 황해쪽의 갑문이 닫히고 다음엔 인천항의 해수면과 도크의 높이가 같아지도록 해수면을 조정한 뒤 수면높이가 같아지면 인천항 쪽의 갑문을 열고 배는 인천항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항의 도크는 동양 최대이며,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갑문은 모두 2개인데, 하나는 5만톤급 선박 1척이, 하나는 1만톤급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
△ 우리가 인천항 갑문식 부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척의 배는 내항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척의 배가 외항에서 들어오던 중이었다. 운 좋게도 갑문이 열리는 것과 닫히는 것 모두를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닫혀있는 갑문
△ 배가 독(dock)안에 완전히 들어오게 되자 외항측 갑문이 닫히고 있다. 닫히는 것은 동영상으로 촬영 완료 - !
△ 저렇게 깃발을 꽂아두는 것은 '지금 검역중인 배입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 검역이 끝나서 내항측 갑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이 때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발랄하게(?) 등장하셔서는 배를 묶어놨던 밧줄을 푸셨다. 배의 모든 일정을 담당하는 꽤 중요직을 맡고 있는 분이시라 하셨다
△ 배는 서서히 내항으로 들어간다 - 안녕!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매번 하는 것은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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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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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신도시는 인천광역시의 해안지역의 바다를 매립하여 6㎢ 정도의 간척지를 개발해 국제 업무 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업들에 의한 개발 프로젝트로써, 이 10년간의 개발 계획에는 약 4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분당, 일산, 평촌 등 수도권 지역 대부분의 신도시들이 침상도시의 성격으로 건설된 것과는 달리, 송도 신도시는 국제업무지구로서의 성격으로 추진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인천과 한국을 아시아의 으뜸가는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려는 열망이 들어 있는데, 이 계획의 핵심에 인천대교가 자리잡고 있다. |
(+) 참 기분이 묘했다. 부산이 아직은 제 2의 도시이지만, 언젠가는 인천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 국민으로선 뿌듯했지만, 부산 시민으로선 웬지 질투가 난단 말이지. SBS 런닝맨에서도 종종 나오던데, 멋진 도시가 될 것 같다. 한편으론 너무 인공적이라 답답했지만. 09년도 사진이니까, 지금은 또 많은 건물이 들어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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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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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은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응봉산에 조성한 공원으로 응봉산 전체를 자유공원이라 통틀어 부른다.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으며 응봉산 정상엔 한미수호 통상조약체결을 기념하기 위해 조약체결 100주년이 되는 1982년에 세운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이 있다. 본래 인천항 개항 이후 거주 외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각국의 조계지들 사이에 위치한 이 공원 최초의 이름은 만국공원이었다. 개항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에는 서공원으로 불렸다가 후에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응봉상 정상에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이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우리나라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는 등 군사적 열세일 때,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하여 북한군을 한중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업적을 기려 동상을 세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상의 존립을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9월 쯤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데, 보수진영은 "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남한은 적화되었을 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싸운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이 동상은 반드시 존립하여야 한다. 또 이 동상의 철거는 국민의 정서와도 동떨어져있다."라며 철거를 반대한다. 반면 진보진영은 "맥아더 장군은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침략자이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통일을 해야할 시점이다."라고 하며 동상철거를 찬성하고 있다.
2009 GeoEST 추계 정기 답사 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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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에서 자유답사를 하다 자유공원에서 모이기로 했으므로 자유공원으로 올라왔다. 동기들과 함께 걷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우산을 씌워주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둘이서 걷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뭐 이것저것 물으시며 신기해하셨다. 어쨌든 덕분에 비는 덜 맞았다. 비둘기가 참 많은 공원이었다.......
맥아더 동상앞에 도착했더니 맥아더 장군을 조문하러 오신 할아버지들이 계셨다. 부산으로 치면 UN묘지에 조문하러 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