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늬바다

답사/09 인천 2013. 2. 25. 17:27

 

 

 

 

 

  진촌리에서 북동 방향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하늬바다는 백령도 진촌리의 감람암 포획 현무암 분포지라고 하는데 예부터 서풍이 강하게 부는 바다라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제 393호로 지정되었다. 하늬바다 바로 앞에는 물범바위가 있으며, 북서쪽으로 약 7~8km 떨어진 장산곳과 백령도 중간 해역에는 인당수가 있다. 

 

 

 

 

 

 

<감람섬 포획암>

 

  알칼리 감람섬 현무암류이며 현무암의 절대연령을 측정한 결과, 신생대 제 3기 말인 약 450만 년전에 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와 똑같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화산지대로, 용암의 분출로 인해 제주도와 비슷한 완만한 기복의 지형이 되었다. 진촌리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분포하며, 규암층을 덮고 있다.  분출구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분출양식은 알 수가 없다.

 

  황갈색 암편은 감람석 포획암으로 마그네슘, 철, 규산염으로 이루어진 광물이다. 감람석은 지각하부에 있는 맨틀을 구성하는 주된 물질로 지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1500℃의 고열에서도 자 녹지 않는다. 지하 깊은 곳에 있던 감람석이 현무암에 포획될 수 있었던 것은 마그마가 분출할 때 맨틀 상부에 암석 상태로 있던 감람석의 일부를 떼어냈기 대문이다.

 

 

  맨틀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을 주는 자료이지만, 그 보존과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 이제 이 곳은 더 이상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누군가 현무암에 포획되어 있던 황금색 감람석을 모조리 빼가서 감람석 단괴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감람석이 있던 자리에는 구멍과 누런 빛깔만 조금씩 남아있을 뿐이다.  

 

 

 

 

 

 

 

 

 

 

(+) 하늬바다에 가면 물범을 볼 수 있다고해서 조금 기대했는데, 결국은 보지 못했다. 머리만 빼꼼 빼곰해서 못보고 놓쳤다. 운좋게 발견한 학우들도 있었다만.....

 

스케일바의 중요성을 이제서야 깨닫고 급한대로 백원짜리랑 볼펜 첨가했다. 누군가 감람석을 모두 가져갔기 때문에 더이상 감람석 포획암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천연 기념물로서의 가치도 잃었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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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무진

답사/09 인천 2013. 2. 25. 17:12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약 4km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높이 50 ~100m의 거대한 절벽들을 말한다. 두무진은 원래 뾰족한 바위들이 마치 머리털같이 생겼다고 하여 두모진이라고 불리다가 후에 장군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두무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백령도의 서북단 해안에 위치하는 두무진은 황해도의 서쪽 끝인 장산곶과 불과 1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두무진은 수억년동안 파도에 의하여 이루어진 병풍같은 깎아 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동해의 금강산 만물상과 비슷하여 일명 해금강이라고 불리고 있다.

 

  두무진은 원생대 상원계에 속하는 약 10억년 전 해빈 환경에서 오랜 세월 퇴적된 사암이 지하 깊은 곳에서 고열과 고압에 의해 변성된 규암으로 이루어져있다.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두무진 지층은 이후 지속적으로 지반이 상승하면서 파도와 비바람에 의해 집중적인 침식과 풍화를 받아 깎여나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항 기암의 형태로 점차 육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퇴적이 이루어질 때 입자가 고운 점토와 셰일등은 먼 바다까지 떠밀려나가 쌓인다. 반면 입자가 굵은 모래나 자갈은 해안가나 얕은 바다에 퇴적된다. 두무진 하부의 퇴적물은 먼 바다에서, 상부의 모래층은 해빈 환경에서 퇴적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연흔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수의 영향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두무진 규암층의 퇴적 환경은 바닷물이 빠지고 드나드는 해안가의 모래 평원으로 보고 있다.

 

  퇴적층에는 높이 4.5~ 5m 간격으로 다른 색이 번갈아 나타난다. 이런 형태로 퇴적된 것은 주기적인 해수면 변동과 관련된 것이다. 퇴적층 가운데 짙은 색의 층은 물이 차오르는 습한 환경에서, 옅은 색의 색의 층은 물이 빠진 건조한 환경에서 퇴적되었다. 두무진에는 홍도나 거제도의 해금강의 기암괴석과는 달리 층상암벽에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바위, 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이 조각된 바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홍도와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한 절경이다.

 

 

▽ 유람선 위에서 본 두무진

 

 

 

 

 

 

 

▽ 가까이서 본 두무진

 

 

 

 

 

 

 

 

 

 

(+) 4시간 동안의 항해에 너무 지쳐있었지만, 또다시 유람선에 올라 두무진을 보았다. 여전히 배멀미에 고생하는 학우들도 있었지만...뭐, 좋은 경험이었다. 친절하고 재밌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고!  그리고 다시 버스로 이동해서 가까이에서 두무진을 만났다. 저물어가는 해 덕분에 규암이 눈부시게 빛났다. 

 

마지막 사진은 연흔! 물결무늬가 바위위에 나타나는 게 너무 신비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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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농업

답사/09 인천 2013. 2. 25. 16:53

 

 

 

  백령도는 섬이지만 의외로 어업보다는 농업으로 먹고 살아가는 섬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5~60%,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15%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평평한 평지로 이루어진 섬이라 대부분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제주도는 논보다 밭의 비중이 훨씬 높은데 말이다) 그리고 쌀은 정부수매가 이루어져서 주민들은 대체로 풍족하게 사는 편이라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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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동 교회 & 백령 기독교 역사관

답사/09 인천 2013. 2. 25. 16:50

 

 

 

 

중화동 교회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이며, 백령도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이다. 가장 빠른 개혁의 길을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믿은 개화파 정치인 허득(許得)이 황해도 소래교회의 도움을 받아 1898년 10월 9일 설립하였다.

 

  백령도에는 1832년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로는 처음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1898년 6월 전도와 교회 설립 등의 모든 제한이 풀리자, 서경조 형제가 1898년 한학서당에서 이루어진 중화동교회 설립 예배를 인도하였고, 1899년 소래교회에서 건축자재를 공급받아 초가 6칸(39.6㎡) 규모로 최초의 중화동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가 급속하게 발전하였으며,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하던 언더우드 목사가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회장이 되었다. 교회 바로 옆에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 박물관인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백령 기독교 역사관  

 

  백령도 중화동교회 옆에 있다. 옹진군이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 소래교회, 화성군 제암리교회 등의 협조를 얻어 건립을 추진하였으며, 2001년 11월 20일 개관하였다. 769㎡의 부지에 연면적 118㎡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총 3억 8,000만 원의 사업비가 소요되었으며, 19세기 초부터 백령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전개된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기록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내부에는 초기 중화동교회 모습, 최초 백령도 복음 전파 장면, 서양선교사 성경 전달 재현, 토마스 선교사 방문 모습, 언더우드 선교사 세례 집례 등을 전시하여 백령도가 ‘선교현장’ 역할을 하였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중화동교회 설립사, 역대 성직자 사진, 언더우드 목사 기념비 등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아 한국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 순례 현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 교회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 깨끗했다. 1898년에 설립했으니 올해는 설립한지 105주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도 꽤 오래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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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곶해안

답사/09 인천 2013. 2. 25. 16:40

 

 

  육지와 백령도 간의 여객선이 들고나는 용기포 선착장을 빠져 나와 통일 기원탑을 지나면  곧 바로 왼편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드넓은 모래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나타나는 길이 약 4km, 폭 약 300m에 달하는 거대한 회백색 모래사장인 사곶해빈이다.

 

  사곶해빈은 모래의 질이 곱고 부드러워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하지만, 특히 비행기가 뜨고 내릴 만큼 널찍하게 펼쳐진 백사장이 있어 천연 비행장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사곶해빈은 백령도를 이루는 주 암석인 석영질 규암이 오랫동안 해수에 의해 침식을 받아 쪼개지고 닳아서 형성된 고운 입자의 모래가 파도의 에너지가 약한 오목한 해안을 따라 쌓여 형성된 것이다. 사곶해빈은 썰물보다는 밀물이 보다 강하기 때문에 모래가 계속적으로 운반되어와 쌓일 수 있었다. 해빈의 모래는 실제로 자동차가 시속 약 100km 이상의 속력으로 달려도 바퀴자국이 생기지 않을 만큼 단단하기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군용비행기의 비상 활주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천연 비행장이란 별칭이 붙었고 사곶해빈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빈과 함께 세계에서 단 두곳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이라고 한다.

 

  사곶해빈이 간이 비행장으로 사용될 만큼 단단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분급이 양호한 세립질 모래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둘째, 주변해역의 해류가 너무 세기 떄문에 점토질 같은 미세한 퇴적물은 이곳에 쌓이질 못하고 조수 및 해류와 함께 먼 바다로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셋째 썰물 시 다져진 세립질 모래 퇴적물의 작은 입자들 사이의 틈새에 남아 있는 바닷물이 표면장력으로 모래입자들을 서로 견고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2009 GeoEST 추계 정기 답사 초록>

 

 

 

 

 

 

 

 

(+) 역시 위성지도는 볼 수 없다. 버스를 타고 쌩쌩 달렸는데 바퀴가 전혀 빠지지 않았다.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이라니 얼마나 가치있는감! 아 멋지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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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해안

답사/09 인천 2013. 2. 25. 16:25

 

 

  용기포 선착장 옆 용기원산 정상에는 백령도 인근 바다 선박들을 인도하던 용기포 등대가 있다. 1960년대 사용하던 것으로 지금은 사용치 않지만 고색창연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군부대 지역이라 민간인의 접근은 어렵다. 이 등대가 있어서 아래의 해안지역을 등대해안이라고 부른다. 

 

 쏙 들어간 지형이라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산길로 들어가면 갑자기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절벽, 밀려오는 파도가 태초의 백령도를 느끼게 한다. 해안 역시 군부대 통제 지역이었으나 최근 민간인의 접근이 가능해져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2009 GeoEST 추계 정기답사 초록)

 

 

 

 

 

 

 

 

 

 

 

 

  등대해안 천연동굴

 

  해식동굴은 해식애의 기저부에 발달한 것으로 대부분 해안선 가까이에서 파도, 조류, 연안류 등의 작용을 받아 해안에 형성된 동굴이다. 일반적으로는 암층의 갈라진 틈인 층리나 절리, 단층 등 저항력이 약한 부분에서 시작되나 관입된 암맥이나 비교적 연한 암층과 암석의 국부적인 탈락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해식동굴은 해식절벽과 같이 산지가 해안까지 연결되어 절벽을 이루고 있어햐 하며 충분한 세기의 파도가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 파도에 의해 깎여 들어가면서 만들어지므로 파도가 닿는 정도의 깊이 이상에서는 깎이거나 깊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 규모나 길이에 어느정도 한계가 있고 밀물 때에는 물에 잠기거나 잠길 듯 말 듯 한다. 이러한 해식동굴이 침식 작용이 계속 되어 동굴 윗부분까지 없어지고 나면 해식대지가 만들어진다. 과거의 해면과 관련하여 해식동은 구정선 고도의 해심, 단구를 인정하는 지표로 이용된다. 

 

백령도의 등대해안 지역의 해식동굴은 규암으로 된 암석해안이 파식작용으로 인하여 형성되었다.

 

 

 

 

 

 

 

 

 

(+) 군사지역이라 위성사진을 첨부할 수 없다.

 

4시간 여의 항해끝에 도착해서 부두에 내렸는데, 땅을 밟는 느낌이 새삼 좋았다. 뱃사람들이 외치는 "육지다!!!!!! 육지야!!!!!"의 기분을 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근처의 등대해안까지 신나게 걸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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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여객터미널 & 인천대교

답사/09 인천 2013. 2. 25. 11:05

 

 

 

(+) 첫날 인천항 답사를 마치고 부근의 숙소에서 하룻밤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백령도로 가기 위하여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 우리가 타게된 마린브릿지호.  첫날 날씨가 흐렸지만 둘째날부터는 다행히도 몹시 쾌청!

 

 

 

 

 

(+) 배를 타고 지나가며 인천대교를 볼 수 있었다. 개통 직전이었기 때문에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부산의 광안대교가 인천대교에 최장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그래도 참 아름다운 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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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갑문

답사/09 인천 2013. 2. 25. 10:58

 

 

  인천항

 

  서울의 관문이며, 국내 최대 공업지대의 하나인 경인공업지대와 중부지방을 세력권으로 하는 서해안 제일의 무역항이다. 8개의 화물취급 전용부두가 있으며, 연간 3464만 톤의 하역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외항에서는 유류와 연안 해사(모래), 무연탄 등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

 

 

▽ 갑문의 원리를 설명한 표지판

 

 

 

 

 

  Dock이란 선거(船渠)라고도 한다. 사전적 정의는 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서 조선소,항만 등에 세워진 시설이라고 되어있다. 쉽게 말하면 배를 주변이 막힌 곳에 넣고서 물을 빼고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말한다.

 

  조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 해안(예- 황해)에는 항구를 건설하려면 조차를 극복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한데, 수문식 독이 대표적인 시설이다.

썰물이 시작되면 수문을 닫아서 수문 안쪽의 도크에서는 수위의 변화가 없어서 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게 한 시설이다.

 

  갑문 또는 수문이라는 것은 배가 도크에 들어온 뒤 바닷물의 움직임을 막기 위한 문을 뜻하는 것으로 인천항의 경우에는 슬라이딩 식으로 되어있다. 인천항의 내항과 외항을 갑문과 도크로 막아 격리시킴으로써 서해안의 큰 조수간만의 차로 인한 해수면의 높이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는 원리이다. 외항에서 인천항의 내항으로 들어올 때는 배가 들어오기 전에 갑문을 닫아둔 상태로 도크내의 해수면이 황해의 해수면과 같아지도록 물을 빼거나 넣거나 해서 조절한다. 그렇게 조절이 되면 갑문이 열리고 배가 도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원리이다. 배가 도크 안으로 들어간 후 황해쪽의 갑문이 닫히고 다음엔 인천항의 해수면과 도크의 높이가 같아지도록 해수면을 조정한 뒤 수면높이가 같아지면 인천항 쪽의 갑문을 열고 배는 인천항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항의 도크는 동양 최대이며,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갑문은 모두 2개인데, 하나는 5만톤급 선박 1척이, 하나는 1만톤급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 우리가 인천항 갑문식 부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척의 배는 내항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척의 배가 외항에서 들어오던 중이었다. 운 좋게도 갑문이 열리는 것과 닫히는 것 모두를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닫혀있는 갑문

 

 

△ 배가 독(dock)안에 완전히 들어오게 되자 외항측 갑문이 닫히고 있다. 닫히는 것은 동영상으로 촬영 완료 - !  

 

 

△ 저렇게 깃발을 꽂아두는 것은 '지금 검역중인 배입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 검역이 끝나서 내항측 갑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이 때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발랄하게(?) 등장하셔서는 배를 묶어놨던 밧줄을 푸셨다. 배의 모든 일정을 담당하는 꽤 중요직을 맡고 있는 분이시라 하셨다

 

 

△ 배는 서서히 내항으로 들어간다 - 안녕!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매번 하는 것은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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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신도시

답사/09 인천 2013. 2. 25. 10:49

 

 

 

  송도 신도시는 인천광역시의 해안지역의 바다를 매립하여 6㎢ 정도의 간척지를 개발해 국제 업무 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업들에 의한 개발 프로젝트로써, 이 10년간의 개발 계획에는 약 4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분당, 일산, 평촌 등 수도권 지역 대부분의 신도시들이 침상도시의 성격으로 건설된 것과는 달리, 송도 신도시는 국제업무지구로서의 성격으로 추진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인천과 한국을 아시아의 으뜸가는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려는 열망이 들어 있는데, 이 계획의 핵심에 인천대교가 자리잡고 있다.

 

 

 

 

 

 

 

 

 

 

 

 

(+) 참 기분이 묘했다. 부산이 아직은 제 2의 도시이지만, 언젠가는 인천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 국민으로선 뿌듯했지만, 부산 시민으로선 웬지 질투가 난단 말이지. SBS 런닝맨에서도 종종 나오던데, 멋진 도시가 될 것 같다. 한편으론 너무 인공적이라 답답했지만. 09년도 사진이니까, 지금은 또 많은 건물이 들어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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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답사/09 인천 2013. 2. 25. 10:41

 

 

 자유공원은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응봉산에 조성한 공원으로 응봉산 전체를 자유공원이라 통틀어 부른다.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으며 응봉산 정상엔 한미수호 통상조약체결을 기념하기 위해 조약체결 100주년이 되는 1982년에 세운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이 있다.

  본래 인천항 개항 이후 거주 외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각국의 조계지들 사이에 위치한 이 공원 최초의 이름은 만국공원이었다. 개항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에는 서공원으로 불렸다가 후에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응봉상 정상에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이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우리나라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는 등 군사적 열세일 때,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하여 북한군을 한중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업적을 기려 동상을 세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상의 존립을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매년 9월 쯤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데, 보수진영은 "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남한은 적화되었을 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싸운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이 동상은 반드시 존립하여야 한다. 또 이 동상의 철거는 국민의 정서와도 동떨어져있다."라며 철거를 반대한다. 반면 진보진영은 "맥아더 장군은 제국주의의 상징이자 침략자이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통일을 해야할 시점이다."라고 하며 동상철거를 찬성하고 있다.
 

 2009 GeoEST 추계 정기 답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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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에서 자유답사를 하다 자유공원에서 모이기로 했으므로 자유공원으로 올라왔다. 동기들과 함께 걷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우산을 씌워주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둘이서 걷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뭐 이것저것 물으시며 신기해하셨다. 어쨌든 덕분에 비는 덜 맞았다. 비둘기가 참 많은 공원이었다.......

 

맥아더 동상앞에 도착했더니 맥아더 장군을 조문하러 오신 할아버지들이 계셨다. 부산으로 치면 UN묘지에 조문하러 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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