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청령포

답사/10 강원,충청 2013. 3. 1. 11:57

 

 

  영월읍을 사이에 두고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르는 서강은 그동안 동강의 유명세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서강 곳곳에는 결코 동강에 뒤지지 않는 빼어난 절경이 그득하다. 우선, 서강의 물줄기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영월의 관문에 위치한 선돌이 있고, 평창강이 주천강과 만나는 선암마을의 한반도 모양 지형과 단종이 유배되었던 방절리 청령포 등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이다.

 

  1452년 단종은 왕위를 숙부인 세조에게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의 물줄기에 둘러싸여 있고 뒤는 가파른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세상과 단절된 섬과 같은 곳이다. 지형학적으로는 하천이 물길을 바꿔가며 흘러 유로의 변경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평가되는 곳이기도 하다. 청령포를 돌아 흐르는 서강의 물줄기는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안쪽으로, 즉 맞은편 방절리 야산 쪽으로 크게 굽어 흘렀다. 그때는 영월에서 청령포로 들어오는 도로 옆의 논들도 서강의 물길이었다. 이렇게 옛날에 물이 흐르던 길을 구하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태백시 구문소가 자리한 동점동을 비롯하여 전국의 하천의 중상류 곳곳에 나타나는 지형이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는 하방침식과 측방침식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기반암에 발달한 절리나 구조선을 따라 계속적으로 침식이 가해지면 결국 목(neck) 부분이 절단되어 새로운 물길이 형성된다. 이후 절단된 구하도는 새롭게 형성된 더 낮은 물길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더 이상 물이 흘러 들어갈 수 없게 되니 기존의 물만 고여 있는 못으로 변하게 된다.

 

  서강의 물줄기가 곡류 절단되어 현재의 청령포가 형성된 것은, 약 2,300만 년 전 신생대 제 3기 중기에 접어들면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축으로 하는 비대칭 요곡운동(지반의 급속한 융기)에 의해 물길이 빨라져 침식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방절리 구하도 토탄층의 절대 연령을 측정한 결과에 의하면, 지금의 물길로 유로 변경이 일어난 시기는 약 4만 5,000년 전이라고 한다.  

 

2010 지리 style 춘계 정기답사 초록

 

 

 

 

 

 

 

 

 

 

 

▽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찍은 구하도

 

 

 

 

△ 위성사진으로 본 구하도와 미앤더핵

 

 

(+) 입학한 뒤로 선배들에게 답사에 대해 물어보면 늘 강원도를 추천해주곤 하셨다. 제일 볼거리가 풍부한 지역이었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답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강원도에 대해 많은 기대를 품었다. 

 

 우리 동기들이 집부가 되어 처음 계획한 답사라 의미가 있다. 학술부장, 과대표, 회장이었던 K와 K언니, L이 특히 무지막지 고생을 많이 했다. 또, 3년 내내 인솔하셨던 S교수님의 안식년으로 인해 K교수님과 함께 답사를 떠나게 되었다. S교수님의 전공은 지형학, K교수님의 전공은 문화,역사지리학이어서 장소를 보는 시각도 굉장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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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리해안

답사/09 인천 2013. 2. 27. 22:22

 

 

  지두리는 직각(ㄴ)형태의 문 경첩의 대청도 사투리에서 나온 것으로 해변에 동서로 가로지른 산줄기가 여름철 게절풍인 태풍, 남풍, 남서풍, 남동풍을 막아주어 파도가 없는 안전한 피서를 가능케 한다. 가로 1km, 세로 300m의 딱딱하고 경사가 완만한 백사장과 완만한 수심을 갖고 있다.

 

 

 

 

▽ 스케일바(S선배) 크기 비교

 

 

 

 

(+) ....전체 사진에서 스케일바 역할의 S선배가 잘 보이지가 않아.. 좀 의미가 없어진 스케일바같지만 암튼 재밌는 사진을 남긴 것 같다.

 

  이 곳이 09년도 추계 답사의 마지막 코스였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붉은 석양 아래 빛나는 지두리 해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백령도와 대청도에서의 일정이 그렇게 모두 끝났다.

 

  숙소로 돌아가서는 다같이 통닭을 뜯어먹었다. 교수님께서 약 30마리를 사주셨는데 대청도에 치킨집은 한 곳이었고, 튀김 기계가 한 개였기 때문에 30마리를 완성하시는데 두시간(?) 정도 걸리셨다고 하셨다. 교수님들과 조교선생님과 맥주잔을 기울이며 무사히 끝난 백령도 답사를 자축했다. 

 

  백령도와 대청도는 오기 쉬운 곳이 아니므로.. (아마 앞으로 평생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기억에 많이 남는 답사였다. 공기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맑고, 이렇게 별이 많이 떠있는 곳도 처음 봤다. 신종플루 관계로 취소된 일본 답사도 많이 아쉽긴 했지만, 어쩌면 더 귀중한 기회였던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의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생긴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46명의 아름다운 영혼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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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죽동 해안사구

답사/09 인천 2013. 2. 27. 22:20

 

 

  가로 1km, 세로 500m 규모. 해변의 모래가 바닷바람에 산기슭까지 날아와 쌓여있다. 모래를 손에 움켜지면 입자가 밀가루처럼 고와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소리없이 빠져나간다. 이런 모래가 검은낭큰산(206m) 북쪽 산등성이의 해발 고도 80m 까지를 뒤덮고 있다. 이 모래의 고향은 바로 해안사구 앞의 옥죽포해수욕장과 농여해수욕장의 모래가 강한 바닷바람에 날아와 한 알 두 알 쌓여 형성된 것이다.

 

  옥죽동에는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옛말이 있다. 예부터 이 곳은 그만큼 날아드는 모래 때문에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많았다. 그래서 옹진군은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소나무 2000여 그루를 해안가에 심어왔는데 그 효과가 최근에 나타나고 있다.

 

  현재 사구에는 예전처럼 모래가 풍부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식생들이 자라나 사구의 모양도 차츰 바뀌고 있다. 새로운 모래는 유입되지 않고 기존에 쌓여 있던 모래는 조금씩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있어 10여 년 사이에 사구의 크기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10여 년 만에 사구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주민들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소나무는 꼭 필요한 것이나 지금의 상황에 변화를 가져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이제 이국적인 풍관을 자랑하던 옥죽동 해안사구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 아, 또 옮기다 보니 빠트린 일정.... 사자바위 혹은 이구아나 바위 다음의 코스였던 옥죽동 해안 사구!

마치 사막 탐험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만큼 무척이나 큰 사구였다. 이런 곳이 대한민국에도 있었다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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